금강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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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선문


뇌허(雷虛) 김동화박사(金東華博士) 기공비(紀功碑)


불교사상을 철학적 윤리적으로 정립하고 실천불교운동에 앞장선 선지식이시다. 1902년 경북 상주출생으로 1913년 동해사에 출가하여 이듬해 남장사에서 수계하고 입정대학을 유학하셨다. 귀국하시어 오산불교학교 교장, 혜화불교학교 강사, 조선불교중앙포교사 상벌고시위원, 고등고시위원,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 강사 등을 겸직하시다가 1948년 동국대학교 학장, 대학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6년 불교통신대학 초대학장에 취임하시어 1980년 향수를 다하실 때까지 신행불교를 몸소 실천하시었다.




기산(綺山)· 현곡(玄谷)· 춘곡(春谷) 삼화상비(三和尙碑)


기산(綺山)· 현곡(玄谷)· 춘곡(春谷) 삼사는 조계산 송광사 불일보조국사의 법통을 이은 대종사들이다. 기산 석진 화상은 1892년 전남 승주 출생으로 12세에 출가하여 서울 불교중앙학림을 졸업, 본사 지방학림교사와 전문학원 강사를 거쳐 주지에 취임하였다. 1940년 조선불교총본산 태고사 현 조계사 건립상임위원이 되고, 교무부장, 전남종무원장, 정광고등학교 교장, 동국대학교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대소승불교와 영혼에 관한 논문은 학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현곡 김잉석(金芿石)박사는 1900년 승주 쌍암에서 출생하여 12세에 송광사 혜은(彗隱)문하에서 득도하고 26년 강원교육을 마치고 중앙학림과 일본 용곡대학에서 불교학을 전공한 후 귀국하여 보성중학, 중앙불전에서 교편을 잡고 그 후 30여년간 동대에서 사무처장, 도서관장, 불대학장을 역임하였다. 춘곡 박재영(朴再榮)화상은 1899년 송광면 이읍에서 출생하고 17세에 송광사 박보운스님에게 득도하고 금명대강백에게 이력을 마쳤다. 송광사 재무, 교무, 법무, 총무로서 불사 사무에 진력을 다하였다. 화상의 호걸스러운 기상과 명필은 한국선서화계(韓國禪書畵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철운(鐵雲) 조종현(趙宗玄)대법사비(大法師碑)


철운(鐵雲)대법사는 전남 고흥 출생으로 17세에 선암사 강주 경운노사에게 득도하여 진진응, 박한영 양사에게 대교와 염송을 마치고 한용운, 박한영 사의 지도하에 항일독립운동과 조선불교 총연맹운동에 앞장섰다. 일본유학 후에는 일생을 포교와 전법에 전력하여 동화사, 선암사, 마곡사, 월정사 강사로 재직하였다. 벌교중고, 광주일고, 보성중고, 우석중고에서 교편을 잡으실 때 문학활동에도 큰 관심을 가져 노산· 육당문학상 심사위원을 지내셨다. 동국대학교이사, 총화종 종정, 관음종 종정을 역임하셨다.